먼저 선조님의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오기를 발견하여 지적하여 주신 관준 종친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래 내용은 충주시 홈페이지의 기록내용입니다. 족보기록의 자료를 제시 확인한후 수정할것을 2004년 9월 16일 요청했습니다.
== 충주홈페이지 역사 인물 메뉴의 기록내용 ==
이순우(李純祐) (? ∼ 1196(명종 26)) 고려 시대의 문신으로 우계 이씨의 시조이며 중서사인 이양식의 아들이다. 초명은 청이었으며 자는 발지이다. 어려서부터 글짓기로 유명하였고 의종 때에 문과에 장 원하여 충주사록에 발탁 되었다가 1186년(명종 16)에 공역승겸직한림원으로 추천되 었다. 이때에 왕태후가 유창으로 고생하는 것을 위해 기도문을 지었는데 종기는 「어머니의 젖에 났으나 아픔은 짐의 마음에 있다」는 글귀로 왕의 총애를 받기 시 작하여 제주·한림학사로 승진되었다.
팔관회에서 유우를 교취하여 경우를 손실케 하는 폐단을 없이 할 것을 상주하여 윤 허가 있었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게 되었다. 대사성에 이르러서 최충헌에게 살해 되었다.
2004년 9월 20일 청주시홈에서 수정된 내용입니다.
== 수정내용 == 우계이씨 초명은 청(請)이며 자는 발지(拔之) 중서사인 양식의 아들이다. 초명은 청이었으며 자는 발지이다. 어려서부터 글짓기로 유명하였고 의종 때에 문과에 장원하여 충주사록에 발탁 되었다가 1186년(명종 16)에 공역승겸직 한림원으로 추천되었다. 이때에 왕태후가 유창으로 고생하는 것을 위해 기도문을 지었는데 종기는「어머니의 젖에 났으나 아픔은 짐의 마음에 있다」는 글귀로 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여 제주·한림학사로 승진되었다.
팔관회에서 유우를 교취하여 경우를 손실케 하는 폐단을 없이 할 것을 상주하여 윤 허가 있었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게 되었다. 대사성에 이르러서 최충헌에게 살해 되었다.
........................................................................................ ■ 취사홈운영자: 충주시의 2세 휘 순우에 관한 자료는 충주문화원에서 발간한 책자를 참고한 자료이며 2004년 9월 20일로 문구가 어색하긴 합니다만 수정이 완료 되었습니다. -[09/20]-